<화평의 왕>

(스가랴 9:9-10)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2024년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하마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 등, 수많은 전쟁과 분쟁들 가운데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죄악에 물든 인간들은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어제도 오늘도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며 스스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스가랴서의 말씀은 이러한 전쟁의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평의 왕'으로 오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전 세계의 왕으로 오셨고,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전 세계의 인류를 위한 메시아로 오셨음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선민사상에 물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자신들만을 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읽는 구약성경 스가랴서에 이미 메시아는 그들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 오신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 전쟁과 분쟁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끝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인간에게 죄가 머물고 있는한 이기심과 욕망이 인간을 지배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우리들은, 화평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제자들로, 그 분이 가르치신 화평의 세상을 오늘 이곳에서 이루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은 전쟁과 분쟁으로 아귀다툼을 할지라도 우리가 있는 곳은 오직 화평과 평강이 넘쳐나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서 분파를 이루고 싸움에 몰두하는 크리스챤들을 봅니다.

그들의 행위는 화평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교회를 교회가 아닌 세상의 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위 그들의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정의 길을 가는 것 처럼 요란하지만, 정작 그 속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목적으로 만들고 있고, 믿음을 그리고 교회를 그들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변증가인 C.S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상위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악마인 웜우드라는 견습악마에게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인지를 가르치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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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소집단은 내적으로는 서로 찬사를 주고 받는 온실관계를 발전시키는 반면,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엄청난 교만과 증오를 키워나가게 되지.

그들이 뻔뻔스럽게 이것을 즐기는 이유인즉슨, 자신들의 매후에 ‘대의’가 버티고 있으며 이 대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게야.

애초에 원수(그리스도를 칭함)를 위해 모인 소집단 들이라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교회가 작을수록 좋을 수 밖에.

설사 원수(그리스도)를 알게 된 인간들이라고 해도 파벌 특유의 불편한 긴장과 방어적인 독선에 빠져주니 얼마나 좋으냐. . . .

그(크리스챤)가  어떤 노선을 취하든 너의 주된 임무는 한 가지다.

애국심이든 평화주의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일부로 생각하게 하거라.

. . . 그러고 나서 조금씩 조금씩 소리없이 비위를 맞춰가며, 종교가 ‘대의명문’의 일부로 전락하는 단계까지 몰아가야 한다.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크리스챤)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그리스도)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되는 것이야.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환자(크리스챤)을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세속적 명문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성례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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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기도와 성례와 사랑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는 악마의 밥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것은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화평과 사랑을 위해 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은 누가복음 2장 14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오실 때 이 모습이 이루어질 것임을 믿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박광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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