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돌아가리라>

<흙으로 돌아가리라>

(창세기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화장장에서 아버님을 화장하고 마지막 하얀 재로 남으신 그 분의 마지막 육신을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유골함에 담기는 작은 육체의 마지막은 참 소박한 재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소박한 재 한 줌으로 남을 우리 육신을 위해서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나 싶습니다.

6.25전쟁중에 백마고지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수없이 하고, 여러가지 삶의 굴곡을 넘어 살아오신 아버님의 95년의 삶의 끝의 육신은 결국 한 줌 재 뿐이었습니다.

저도, 우리 모두도, 육신은 결국 그저 한 줌 재로 또는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흙으로 돌아갈 우리의 육신을 위해서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으로 갈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만큼 또 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영생을 위해 사는 것이 재와 같은 허망한 끝이 아니라, 찬란한 소망의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육신을 벗어나는 우리의 영혼은 귀하고 귀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죽음을 그렇게 우리처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을 입고사나 육신을 벗고 사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계속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원히 살아야 할 우리의 영혼이며, 그래서 우리는 육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보고 사는 것이며, 육신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 넘는, 세상을 이기는 자의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영생을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오로지 육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그 어떤 삶을 살았든지 결국 하얀 재뿐이라는 것을 아버님의 재 앞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당신의 육신을 한줌 재로 보여주신 아버님은 저에게 육신의 허무함과 구원받은 영혼의 찬란한 영광을 함께 묵묵히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2024년 3월 29일 서울 추모공원 화장장에서. (박광신 집사)

Add comment

Comments

There are no comments yet.

Create Your Own Website With Web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