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이라는 시인이 “벼락에 대하여”라는 시를 썼습니다.
[벼락에 대하여] (정 호 승)
벼락맞아 쓰러진 나무를 보고
처음에는 무슨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날
쓰러진 나무 밑동에서
다시 파란 싹이 돋는 것을 보고
죄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나무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을
나무들은 일생에 한번 씩은 사람들을 위해
벼락을 맞고 쓰러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을 맞을 수 있겠느냐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맞아 죽을 사람이 있겠느냐
이 시인이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이 시를 가만히 보면 아마 그는 크리스챤이 틀림없지 싶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벼락맞아 쓰러진 나무를 보고, 또 그 나무 밑에서 다시 파란 생명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고, 그 벼락맞은 나무가 뜬금없이 ‘죄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벼락을 맞고 쓰러졌다고 쓰고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의 벼락을 맞고 쓰러진 나무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쓰러져가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늘의 벼락을 예수님이 대신하여 맞고 쓰러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쓰러진 나무 밑둥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아래에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의 싹으로 돋아나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오늘은 누가 나무를 대신해서 벼락맞아 죽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물음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대신 벼락 맞을 삶을 살 수 있겠냐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를 대신하여 벼락을 맞은 사람들 . . . . .
수 많은 그리스도 순교자들이 그런 분들이 아닐까요?
저는 예수님을 위해서 벼락맞을 용기까지는 솔직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럴 순간이 온다면 그럴 수 있기를 바라기는 합니다.
과연 남은 생 가운데서, 날마다 나무를 위해 벼락 맞을 사람으로 얼마나 변화되어 갈 수 있을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벼락 맞아 쓰러진 예수님을 생각하며 제가 삶을 살아 갈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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