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게 물려 죽은 하나님의 사람>

<사자에게 물려 죽은 하나님의 사람>

(열왕기상 13:9)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열왕기상 13: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열왕기상 13: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남 유다의 예루살렘의 성전에 다니는 것을 막기 위해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벧엘에 산당을 세운 것을 규탄하기 위해 보내어진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가 벧엘에 있는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됩니다.

그 늙은 선지자는 천사가 자기에게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먹고 마시게 하라는 명령이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는 그 말에 속아 그만 그 늙은 선지자와 같이 상에 앉아 떡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늙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재하여 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를 심하게 책망하는 소리를 내뱉게 만듭니다. 급기야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는 죽음을 암시하는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13:21-22절)

아마도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는 매우 당황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신을 데려와 대접한다고 했던 늙은 선지자가 갑자기 제 정신이 아닌 듯 자신을 책망하는 소리를 해대니 말입니다.

 

아무튼, 늙은 선지자가 제 정신이 돌아왔는지 식사를 다한 다음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를 위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를 배웅하며 떠나보냅니다.(23절)

그러나 그는 돌아가는 길에 그만 사자를 만나게 되고 사자에게 물려 죽게 되어 비명횡사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큰 의문은 도대체 왜 그 늙은 선지자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이 선지자를 데려다가 먹고 마시게 한 것일까 입니다.

같은 동료의식으로 순수한 대접의 마음을 가져서 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왕인 여로보암에게 호통을 치고 망신을 준 것이 괘씸해서 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선지자 행위를 한 것이 시기가 나서일까요?

성경에는 자세한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아서 그냥 우리의 추측으로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를 보면 그 선지자의 죽음을 듣게 된 늙은 선지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깊히 후회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를 슬피울며 자신의 묘실에 장사 지내주었고 자신이 죽으면 그의 뼈를 함꼐 놓아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는 하나님께 직접 받은 명령을 인간의 말을 듣고 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다시 말씀하시지 않은 이상, 그 늙은 선지자가 선지자건 아니건 듣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말이 그럴 듯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을 직접 해제 하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서는 안되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정통적인 성경 이해 속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도 목회자이고 성경학자라고 하면서 그 성경이해는 틀렸다고 하며 유창한 설명을 하면, 이것이 그런가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이단에 빠지는 기존 교회 성도들이 꽤 있습니다.

또 젊은 사람들 경우는 유명세를 가진, 권위있다고 생각되는 무신론 학자들의 그럴 듯한 주장에 넘어가 신앙을 이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합니다.

 

또 분명히 성경에 죄라고 가르치고 있는 행위를 누군가, “나도 기독교인이야”, “나도 교회 장로야, 권사야” 하면서 “이 정도는 해도 하나님이 뭐라 안하셔” 한다면 은근슬쩍 동의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 말씀을 이해는 했지만 그 말씀의 심각성을 중요시 여기지 않고 안일함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선지자라며 우리에게 들이대도 그들이 다 선지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지자를 가장한 이단들이 끊임없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무신론 인본주의가 그럴 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설득하려고 덤벼듭니다.

또 믿음의 선배인척 하면서 은근히 죄를 종용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럴 수록 우리는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다시 묵상하고 공부하여 지식을 넓히고, 하나님의 뜻을 재확인하면서 가짜 선지자들과 세상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속아 넘어간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우는 선지자가 심판을 받은 것은 속아넘어간 어리석음도 죄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단에 속아 넘어간다면 그 넘어간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맹인에게 인도함을 받는 사람도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은 이단에게 넘어간 사람도 같이 멸망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속아 넘어갔다고 구제를 받을 수 없다는 엄중한 말씀입니다.

 

그 어떤 그럴듯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위배 된다면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으로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재확인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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