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깊은 뜻>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욥은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욥은 왜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고통이 자신에게 임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소리는 하나님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러시냐”고 하소연을 할 뿐이었습니다.

우리도 고통 가운데 처하게 될 때 욥과 같은 하소연을 할 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38-41장에 이르기 까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하는 존재가 하나님 자신이심을 꾸짖듯 말씀하십니다.

만물의 이치를 욥이 하나라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이 모든 것의 이치를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저에게 이 말씀은 이렇듯 위대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비난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꾸중으로 들렸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고통도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묵인하신 고통이라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는 고백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40장 8절에 하나님은 급기야 욥에게 “아직도 너는 내 판결(하나님의 뜻)을 비난하려느냐? 네가 자신을 옳다고 하려고, 내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느냐?”(새번역)하고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욥은 40장4절에서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하며 하나님의 꾸중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고통에 처할 때 너무나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 우리가 바라 볼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때에 저와 우리 교우 여러분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이심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저도 잘 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연약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욥과 같은 하소연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욥처럼 입을 다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저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실 우리가 욥과 같은 신실한 존재여서 이유없이 고통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는 저의 고통이 저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욥처럼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래도 . . . .

우리들이 처한 고통이 속히 끝나고 욥에게 다시 주신 회복의 복을 받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임하는 고통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이라면 이 고통이 연단이 되어 순금처럼 변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는 고통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다만 이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시고,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신 것 처럼 우리에게도 우리의 고통과 연관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 때에 욥의 회복의 복을 우리에게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광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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