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와 예언의 차이>

<계시와 예언의 차이>
성경에 무수히 등장하는 용어들로, 이 용어를 잘 아는 것 같은데 은근히 헷갈리는 용어가 ‘계시’와 ‘예언’ 입니다.
‘계시’와 ‘예언’을 동일한 뜻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을 ‘계시’라고도 생각하고 동일한 뜻으로 ‘예언’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계시’와 ‘예언’은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뜻입니다.

‘계시’의 사전적 정의는 “깨우쳐 보여 줌”, “사람의 지혜로써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神)이 가르쳐 알게 함.” 입니다.
신약성경의 ‘계시’는 헬라어 원어로 ‘아포칼립시스’(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인데, 그 뜻은 ‘베일을 벗긴다.’ ‘숨은 것을 드러낸다.’로 ‘비밀이었던 것이 밝혀진다.’ 또는 ‘숨겨진 사건이 폭로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revelation’ 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신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절대자, 초월자, 창조주)에 대해 인간 스스로 알 수 없기에, 먼저 그분이 당신 자신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계시’는 인간이 스스로 알 수 없고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알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지식, 진리에 대한 깨우침, 예언을 모두 포함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음’ 자체가 계시이며, ‘성경’ 자체가 계시입니다.

-대표적인 하나님의 계시-
(1)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2)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
(3) 인간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님
(4) 장래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5) 인간의 역사 속에 개입하신 사건들

 

반면 ‘예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넓게는 ‘예언’은 ‘계시’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일을 알려주는 ‘예언’ 역시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예언의 성격이 아닌 내용을 ‘계시’라고 하기도 하고, ‘예언’의 내용을 또 ‘계시’라고 표현 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또 ‘묵시(默示)’라고 번역되어 있는 용어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의 뜻은 “직접적으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과 “하나님이 계시를 내려 그의 뜻이나 진리를 알게 해 주는 일”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원문에는 ‘계시’와 ‘묵시’가 사실 같은 헬라어인 ‘아포칼립시스’(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 입니다. 즉 원래 성경에서 같은 단어인데 번역 할 때 그 본문내용의 미묘한 차이를 ‘계시’와 ‘묵시’라는 두 단어를 사용하여 좀 더 구체화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은연중에(침묵중에) 뜻을 나타내 보임’이라는 의미를 강조할 때 ‘묵시’라는 단어를 성경 번역가들이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묵시’라는 단어는 중국어 성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와 ‘묵시’를 굳이 구분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나 두 단어를 구분없이 같은 뜻이라고 보아도 무방해 보입니다.
그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요한계시록’을 카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요한묵시록’으로 부르고 있기도 합니다.

‘계시’는 보통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입니다.

 

일반계시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진리를 말합니다.
시편 19:1-4은 일반계시와 관련하여 선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또 로마서 1:20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을 통해 알려졌다고 바울 사도가 강조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본문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은 우주를 관찰함으로써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창조의 질서와 복잡함과 경이로움은 능력이 많고 영광스러운 창조주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이 개념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 반이성적(反理性的)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개념을 기반으로 전개한 신학을 ‘자연신학(自然神學, Natural theology)’이라고 부르는데 신학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인간이성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성에 반(反)하는 것도 아님을 논증하고 있으며, 우리의 신앙이 결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한 이성적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오늘 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합리성,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주장하는 기독교변증에서 요긴하게 사용됩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 합리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특별계시
일반계시를 통해 알 수 없는 다른 계시를 뜻하는데, 대표적인 특별계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의 계시인 성경은 우리 인간에게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특별히 인간에게 주신 말씀이므로 특별계시라고 부릅니다.

결론적으로 가장 간단히 정의 한다면 “성경 말씀은 계시이다.” 입니다.

 

PS: 한글 개역개정 구약성경에서는 ‘계시’라는 단어가 두 번 출현합니다. (이사야 1:1, 예레미야14:14). 이 때 히브리어 원문은 ‘하존(חזון)’ 이란 단어인데 영어성경에서는 대부분 ‘revelation’이 아닌 ‘visio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번역에서 ‘하존(חזון)’ 을 ‘아포칼립시스’(Apocalypse/ἀποκάλυψις)로 번역하지 않고 ‘보다’의 뜻인 ‘o[rasij’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계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계시’와는 약간 다른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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