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구절 요한복음 3장 8절의 이해>
(요한복음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이 구절은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으로, 매우 유명한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명확히 알기가 상당히 여려운 구절로 유명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의 ‘바람’은 무엇이고 ‘임의로 분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소리는 들어도”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령으로 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다 그러하니라”라는 것은 어떻다는 것인가?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구절을 구체적으로 명쾌하게 해설하는 설교나 설명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성서학자 오경준박사의 해석을 싣습니다.
물론 이 해석이 전적으로 맞는 해석이라 고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발견한 가장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있는 해석으로 보이기 때문에 올려드립니다.
부분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애석하게도 이 유명한 구절은 상당히 난해하게 다가온다. 이 구절을 잘 이해하려면 먼저 몇 가지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1) 바람
헬라어로 ‘프뉴마(πνεύμα Pneuma)’라는 이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바람’이라는 뜻과 ‘영’ 혹은 ‘성령’이라는 뜻이다.
물론 성령을 표현할 때는 보통 ‘거룩한(ἅγιος, 하기오스)이라는 단어가 같이 붙는 경우가 있지만, 그냥 ‘프뉴마’ 자체로도 성령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위에 나타난 주님의 설명 중 ‘바람이 임의로 분다’에 언급된 ‘바람’이 곧 ‘성령’을 상징하는 것임을 금방 깨달 을 수 있다.
(2) 임의로 분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한 가지 특징을 파악하게 된다.
그것은 성령이 바람처럼 ‘임의로’ 분다는 것이다. ‘임의로’란 말은 ‘원하는 대로’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요3:8, NIV)라고 표현한다.
즉 바람이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령님께서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진행하신다는 뜻이 된다.
이런 성령의 움직임을 예수님은 좀 더 구쳬적으로 묘사하신다. 그것은 바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일단 바람 같은 성령님을 제 3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기술한 것이며. 그와 동시에 성령님 자신의 움직임에 어떤 출발점과 목적점이 있다는 점도 내포하고 있다. 즉 바람 같으신 성령님은 어딘가에서 시작하여 어딘가를 향해 움직이기를 원하시고, 또 그렇게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3)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 알지 못한다
문제는 이러한 성령의 움직임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 알지 못하나니”(요 3:8)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때의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 즉 위로부터 나지 않은 사람, 다시 말 해 성령으로 나지 않은 사람의 대표이다.
이는 이미 니고데모 스스로가 증명한 것이다. 그는 ‘위로부터 난다’, 혹은 ‘성령으로 난다’는 개념 자체를 몰랐고, 심지어 이를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다’는 식으로 이해하던 육적인 사람이었다.
이처럼 육적인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성령이 어디서 오시는지 어디로 가시는지’를 모른다 는 점이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나서이다.
그는 예수님의 신비한 기적들을 보며 예수님이 뭔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이 바알세불에서 온다고 하며 성령모독 죄를 지었지만 니고데모는 이 능력이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요 3:2)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 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3:2)
이것이 “네가 그 소리는 듣는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 뒤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보거나 경험해 안다는 뜻이다.
(4)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 기적들에 담긴 참 의미는 모른 채 신비한 현상에만 감탄하여 주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요 3:6)의 상태이다.
이 상태는 모든 것을 육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심지어 거듭난다는 개념까지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것(요 3:4)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다.
니고데모는 성령이 역사하는 기적을 보았지만 그 기적의 뒤에서 성령이 움직이는 방향, 즉 그 기적을 일으키는 성령의 목적을 모른다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거듭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진정한 회심의 상태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기적, 즉 성령의 움직임의 목적과 방향이 예수님이 메시아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시며,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를 대속받고 영생가운데 부활하는 미래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성령이 그리스도로 부터 와서 그리스로로 가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5)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8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 부분의 번역의 오류 때문에 발생했다.
앞 부분과 이어서 보면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인데, 여기서 ‘너’는 니고데모이고,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나지 못한 사람이므로 성령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으로 난 사람도 똑같이 니고데모 처럼 성령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 번역구절을 읽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영어성경을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어성경과 한글번역성경의 가장 큰 차이는 한글번역성경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고 영어성경은 분리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sound thereof, but canst not tell whence it cometh, and whither it goeth: so is every 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KJV)
“The wind blows where it wishes and you hear the sound of it, but do not know where it comes from and where it is going; so is everyone who is born of the Spirit.” (NASB)
문장 분리표시로 영어성경에 콜론 또는 세미콜론으로 표시된 것은 헬라어 원문성경(후대 필사본)에 ‘어디로 가는지’의 뒤에, 이에 해당하는 부호가 있기 때문이다.
–> ὑπάγει· = ὑπάγει ;
여기서 세미콜론의 의미는 그 앞문장과 뒤의 문장 사이에 어떤 접속사가 생략되었음을 나타낸다.
우리말 문법에는 세미콜론의 개념이 없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나는 너를 좋아해;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문장이 있다면 누가 보아도 세미콜론 부분은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생략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미콜론의 의미를 적용하여 3:8을 다시 번역하면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러하다”가 된다.
만약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빠지면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 소리를 들어도 알지 못하는 너와 동일 인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러나’가 들어가면 의미가 달라진다.
니고데모처럼 거듭나지 못한 육의 사람은 성령의 소리를 들어도 그 오고 가는 곳을 알지 못하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니고데모와 같지 않고, 오히려 ‘그러하다’는 뜻이 성립된다.
그러면 이때 ‘그러하다’ 즉 ‘그와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 일까? 대체 무엇과 같다는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앞에서 언급 한 ‘바람 같으신 성령의 움직임과 같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무지한 니고데모와 달리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움직이시는 진행 방향을 알 뿐 아니라, 그분의 움직이심과 같이 자신도 따라 움직인다는 총체적인 의미가 바로 ‘다 그러하니라’라는 표현에 녹아 있다.
한마디로 성령의 사람은 성령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 같은 성령이 임의로 부는 것처 럼 움직인다. 그러나 이것을 바람처럼 자유롭케 움직인다고 해석 하면 안 된다.
어떤 분이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성령의 사람은 바람처럼 자유롭다는 식의 글을 썼는데, 이는 본문의 표면적인 뜻은 파악했으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위험한 발언이다.
바람 곧 성령이 자기 원하는대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이 움직이기 원하시는 특정 방향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이 성령의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는 자기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원하시는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성령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고, 그 오시는 것에서 가시는 곳까지의 길을 같이 따르는 것이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즉 이 해석은 ‘성령의 사람’(거듭난 사람, 회심한 사람)은 성령과 동행하면서 성령이 가는 방향을 깨달아 알고 그 이끄시는 방향을 쫒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 입니다.
우리가 모두 성령과 한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기를 기도합니다.
※ 이상의 오경준박사의 해석 외에 다른 더 좋은 해석이 있으면 올려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Add comm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