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문제>
(칼 바르트의 기도론), 김명룡 박사

오늘의 주제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기도의 문제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늘 발생을 합니다.
특별히 예정론이 많이 강조된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는 그런 문제가 더 많이 발생을 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가 기도하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느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결국에는 실천하지 아니하실까?
나의 어떤 소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렇게 부서지고, 결국에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그만 기도를 정열적으로, 열정적으로 확인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사라지게 되고 기도에 힘이 떨어지는 이런 문제들이 발생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기도 사이에 놓여 있는 대단히 신비하고 어려운 문제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영성 훈련 하는 곳을 가보면은 또 이렇게 강조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가장 지고한 기도, 그러니까 저급한 기도는 내 욕망을 관찰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고 가장 이렇게 차원이 높은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것, 하나님의 뜻에 나를 굴복시키는 그 기도가 가장 지고한 기도다라고 말입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시잖아요?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는 그 정말 어려운 일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께서는, 참 인간 예수님의 그 마음은 십자가 안지고 싶지요.
그렇지만은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보라는 거예요.
이 지고한 단계의 기도는 이런 것이다라는 거예요.
영성 훈련에서 많이 읽혀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기도 하는 토마스 아캠피스의 유명한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이 있습니다. 좋은 책입니다.
우리의 영성 훈련에 있어서 대단히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인데, 그 책도 쭉 읽고 보면은 “나의 어떤 개인적인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에 순복하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본받아서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해요.
경건한 말씀이기도 하고, 고상한 말씀이기도 하고, 또 한국 교회 안에서 설교가 되기도 하고 가르쳐 지기도 하고 하는 대단히 훌륭한 말씀인데, 성도들은 이런 말씀들을 듣고 나면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요.
내가 원하는 것을 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으면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인데 그 높은 차원의 어떤 경건한 그런 가르침을 듣고 나면은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이렇게 좀 세속된 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전부 다 이렇게 땅에다가 탁 처박아 놓고 이제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받들여야 된다, 그러니까 마음이 무겁고 힘든 거예요.
신앙생활하는게 힘들어, 신앙생활 하는게 고달파, 이런 문제가 거기에서 발생을 합니다.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은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이 기도의 문제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는 칼 바르트 교수의 책을 읽어 보면은 대단히 거대한 기도론이 등장해요.
칼 바르트 교수는 ‘하나님의 불변’과 ‘인간의 기도’,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가지고 대단히 자세하게 글을 쓰셨어요.
‘하나님의 불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않는데 우리의 기도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느냐? 제 그런 오늘의 주제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지요.
칼 바르트 교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을 강조해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다이내믹한 만남의 역사라는 거예요
우리의 기도도 역시 그런 특징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그 만남의 장소가 기도라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났잖아요?
그러니까 기도의 특징이 뭐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그게 기도의 특징이기도 하죠.
내게서 이렇게 하나님으로 향해가는 이 방향이 있지만, 또 하나님으로부터 내게 오는 방향도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내게 알리시는, 그러니까 기도라는 것은 바로 그 나와 하나님과 이렇게 역동적인 만남의 순간인 거예요.
하나님 편에서 인간 쪽으로 오는 것만 강조를 하게 되면은 기도가 힘이 약해지고 부담이 생기고, 또 인간 쪽에서 하나님으로 가는 것만 얘기를 하게 되면은 나 개인의 어떤 세속적인 욕망을 관찰시키는 어떤 그런 장소가 되는거죠.
그런데 이 기도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의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의 원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물론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가능한 한 순복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바로 그곳에 굉장히 큰 역사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그 길로 가는 것은 대단히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가지만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는 차원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수 없이 응답하신다는 거예요.
사람이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 기도에 맞춰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기쁘고
감격의 삶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문제가 충돌되는 것, 즉 하나님의 뜻과 내가 원하는 것이 이렇게 충돌되는 것, 이게 충돌되는 것이고, 그럼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지요.
이 충돌될 때에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의 뜻을 순복하는 것은 대단히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은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의 뜻을 바꾸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을까요?
칼바르트 교수께서 자신께서 하신 말씀들을 좀 인용을 해 보면은,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의 기도보다 앞서기도 하지만, 인간의 기도의 뒤를 따르기도 한다.
또 인간의 기도에 근거한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하심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뭔가 결정하시는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원래의 계획과 내가 얘기하는 것이 좀 다를 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그런 계획을 안 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내가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고 그대로 이제 결정하시고 계획에 반영하시고 그렇게 하시면은 좋지요.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 달랐는데 내가 기도를 하면은 그럼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리가 정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계획을 바꾸시기도 한다는 거예요.
이게 성경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실제 예에요.
히스기야가 죽게 됐는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잖아요?
그래서 15년 생명을 더 연장시키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칼 바르트 교수가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을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인용을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바꾸시는 것,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청에 순복하신다는 사실은 그의 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장엄하심과 위험의 영광 속에서 기꺼이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또 원하고 계신 것이다. 그 속에 그의 영광이 존재하고 있다.”
칼 바르트 교수의 관점을 정리를 해보면, 기도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인데, 사람은 사람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을 하십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답을 안 하시는 경우도 있을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기도의 답을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원한는 방식대로 그대로 답을 안하시는 경우가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은 그것이 더 좋은 어떤 것과 관련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 우리를 향한 사랑과 자비하심의 그 크심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대개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그 말이에요.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바꾸시는 일까지 있다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하게 되면은 감격을 느껴요.
너무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답을 하셨네.”
우리가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왜 우리보고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경우가 있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질문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데 우리가 꼭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는냐? 알아서 다 주시면 되지.”
물론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는지, 또 거기에 필요한 것들이 다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셔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은 우리를 향해서 정말 열심히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심히 기도하라고 말씀 하시잖아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를 보세요.
그 재판관이 불의하고 정말 의로운 것이 없는데, 그 과부가 계속가서 그냥 요청을 하니까
“내가 저 과부가 하도 성가시게 구니까 내가 응답을 해 줘야 되겠다.” 그러잖아요.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서 밤낮으로 구하는, 그 구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왜 응답하시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말씀하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원하시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우리가 기도하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뭘 느낍니까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구나.”하고 느끼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감사를 받으시기 원하시고,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알아주시길 원하시는 거예요.
사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의 사랑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이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대단히 중요한 통로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우리가 알게 되는 대단히 중요한 장소예요.
여러분 모두 열심히 기도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구나” 하는 것들을 체험하면서 살아가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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