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욥기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거의 모든 크리스챤들이 아주 잘 아는 성경구절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들도 상당 수 이 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영업장에 가면, 또 개업하는 사업장에 가보면 이 구절이 액자로 걸려있거나, 이 구절의 액자를 선물하거나 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사실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기 매우 껄끄러운 성경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욥기에 나오는 구절로, 욥이 사탄의 공격으로 자식들을 모두 한 시에 잃고,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후 병까지 걸려 고통받는 욥을 위로하겠다고 찾아온, 욥의 친구들중 수아 사람, 빌닷이 한 말입니다.
위로한답시고 찾아온 욥의 세 친구들은, 위로는 커녕 욥의 고통은 욥의 죄 때문이라고 하며, 죄를 고백하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정의로운 대변자인양, 자신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욥보다 더 잘 아는 것 처럼,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저런 분이다 하며 욥을 몰아세우고 훈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하찮은 훈계 중에 수아 사람 빌닷이 욥을 나무라며 하는 말중에 이 성경구절의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구절을 인용할 때에는 그 구절이 누가 말인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알고 인용해야 합니다.
나중에 욥의 세 친구들에게 하나님이 크게 노하십니다.(42:7)
그리고 욥보다 못한 것들이 무슨 훈계질이냐 하며 큰 꾸중을 내립니다.
하나님은 이 세 사람이 욥에게 한 말들이 모두 옳지 못하다고 하시고, 욥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여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고 기도를 하게하라는 명령을 내리셔서, 욥 앞에 그들이 고개를 숙이게 하십니다. (욥 42:7-8)
욥기 8장 7절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한 말은 바로 하나님이 옳지못하다고 한 빌닷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옳지 못하다고 꾸중한 말을 우리는 그 말만 듣기 좋다고 마구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을 안다면, 우리는 이 성경구절을 축복의 뜻으로 마구 사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좋은 것 처럼 들려도 그것이 누가 한 소리인지 알고 인용해야 합니다.
히틀러가, 가롯 유다가 아무리 멋진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한 말을 우리가 함부로 인용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깊은 사유가 필요한 성경 말씀을 무지하게 마구 사용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우리가 앞뒤를 따져가며, 글의 맥락을 살펴가며 읽지 않고, 그저 한 구절만 똑 떼 내어 읽을 때 이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감고 성경을 펼친 후 손가락으로 성경 아무데나 찍어서 나오는 구절이 오늘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답니다.
그야말로 맥락이고 뭐고 없는 무대뽀 성경읽기 입니다.
어느 아침 그 사람이 그렇게 성경 구절을 찍었더니 그만 욥기 2장 9절이 나왔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깜짝 놀란 그는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면 다시 눈을 감고 새로운 성경 구절을 찍었습니다.
그랬더니 요한복음 13장 27절이 나왔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우스개 소리이지만, 맥락없이 성경을 읽으면 이런 우스운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2월 16일 금요일 8시에 ZOOM으로 시작하는 [금요기초교리반]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우스운 크리스챤이 되지 않으려면 기독교 교리가 무엇인지는 알고 교회에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에서 이런 교리교육을 정성껏 하는 교회가 사실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번 기회가 신앙의 기초를 닦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성도님들 모두 참석하기를 간곡히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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