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은사인가?>
(고린도전서 12:31-1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여러가지 은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는 바로 유명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12:31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하고 이어서 ‘사랑장’이 나오기 때문에 저도 그랬고, 많은 성도분들이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의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받기를 원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묵상하면, 이 성경구절이 과연 ‘사랑’을 ‘은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좀 헷갈립니다.
바울은 12장에서 은사와 관련하여 열거하기를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을 행하는 자, 병고치는 은사자, 돕기를 잘하는 자, 다스리기를 잘하는 자, 방언을 말하는 자, 방언을 통역하는 자, 예언하는 자(14장) 모두가 은사를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 신유와 같은 신기한 은사를 받은 것 말고도, 교회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은사를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들을 열거하면서 사랑을 은사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13: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은 은사의 하나가 아니라, 믿음, 소망과 같은 다른 차원의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이 ‘사랑’을 은사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12:31절에서 말한 ‘좋은 길’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린도전서 12:31의 헬라어 원문은 그런 의심이 갖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헬라어 원문성경은 여기에서 “더욱 큰 은사” 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개의 한글성경은 은사를 단수로 번역하고 있는데, 최근에 나온 [우리말 성경]을 보면 “그러나 더 큰 은사들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로, 복수형인 ‘은사들’로 번역하고 있고, 영어성경을 보면 대개 ‘GIFTS’로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것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 열거한 여러가지 은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열거한 은사들 중에 작은 은사가 있고 더 큰 은사가 있으니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는 말이 됩니다.
바울이 은사의 경중을 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린도전서 14: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이 말씀에 “특별히 방언보다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은 예언을 방언보다 더 큰 은사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에서 ‘예언’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은, 미래의 일을 알아맞추는 예언(豫言, prediction)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한다는 의미의 ‘예언(預言, prophecy)’ 입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우리 목사님 같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분들을 기리키는 것이지, 미래를 알려준다는 점쟁이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예언’은 ‘예언(預言, prophecy)’ 입니다.
가끔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당신은 신학 공부해서 목사가 되라신다”, “당신은 목사 사모가 되라신다” 같은 말을 하는데 성경에 의하면 그 예언 (그 사람 예언)이 그 예언(성경이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일단 ‘사랑’을 제외하고 열거된 은사들을 보면 12:28절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은사들을 첫 째, 둘 째, 하면서 열거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울은 아마도 이 순서대로 은사를 경중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은사자는 바울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직게 제자인 사도들이고 그 다음에는 선지자들이며 그 다음은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입니다. 그 다음부터가 우리가 보통 은사라고 생각하는 능력, 신유, 방언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보면 12:31절의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에서 은사들은 이런 열거한 은사들 중에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뜻이며 특별히 ‘사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큰 은사들 중에 초월적 은사가 아니라 말씀 쪽의 은사를 더 큰 은사로 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13:1-3절에서 이러한 은사들을 행할 때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은사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은사의 기반이 되는 것, 모든 은사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14:1절은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라고 합니다.
즉 은사를 행할 때 사랑을 추구하며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은사와 동반되어야 하는 사랑은 은사가 아니라, 12:31절에서 말한 ‘좋은 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은사가 행하여질 때 사랑이 없다면 그 것은 ‘좋은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사는 ‘사랑’이라는 ‘좋은 길’ 위에서 행하여 져야만 온전한 은사 발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랑’은 사모해야 할 더 큰 은사의 하나가 아니라, 그 모든 은사를 지탱해 주는 기본이며, 반드시 모든 성도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즉 ‘사랑’은 여러 개중의 하나와 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을 은사가 아니라 성령님에 의해 성도가 받는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성령께서 믿음을 주시고 동시에 충만함을 주시며, 바로 사랑을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은사보다 더욱 더 중요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13:8절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라며, 모든 은사가 폐하여지더라도 그 기초가 되는 ‘사랑’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린도전서 12장~14장에 걸쳐, 바울은 은사와 사랑의 관계를 진술하면서 이와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저의 생각에 이견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d comm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