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리를 파는 교회>

감리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레의 영향으로 미국에서도 1784년말, 감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청빈을 강조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중요시했던 존 웨슬레는 부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갖고 있었고 교회에서는 항상 검소하고 청빈한 모습을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감리교 목회자들도 최소생계비 이하의 임금을 받고 선교 불모지에서 희생적으로 사역을 해나갔습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이 가난 때문에 가정을 부양할 수가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출발했던 미국의 감리교회가 교세가 확장되자 큰 예배당들을 건축하기 시작했고 예배의 형식도 화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들이 멋진 가운을 입기 시작했고 임금을 받는 유급성가대가 등장했으며 예배에 사용하는 악기도 화려하고 다양해졌습니다.
미국 감리교회의 상징처럼 되어있었던 천막집회는 사라지고 그들은 점차 부르주아 교회로 변모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은 늘어나는 규모에 맞는 교회재정을 충당해야만 했고 급기야 그들은 재원확보를 위해 교회의 예배좌석을 대여하거나 판매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미국 감리교회 초기에는 예배를 서서 드리거나 자신이 앉을 의자를 들고와서 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구성원들중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기 시작하게 되자 예배당의 좋은 자리를 구분하여 놓고 그 자리를 경매를 통해 돈을 주고 대여하거나 또는 구입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하는 자별적 좌석운영을 통해 재정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전 미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일반화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869년에 [시카고 포스트]지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월요일 저녁과 화요일에 있었던 은혜교회 회중석 매매에서, 예배당 좌석 가격들이 지금까지 시카고의 기록을 경신했다. 최고 가격의 회중석은 $2,150 이란 적절한 가격으로 메이슨 루미 씨의 차지가 되었다.그는 처음에 $950을 불렀었다. . . . . .
그 날 마지막 경매에는 $400의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낙태의사인 헤일 박사에게 낙찰되었다.”

이 기사를 분석한 분석가에 따르면 이렇게 판매된 회중석의 평균가격은 $1,200 이었고 그 교회의 회중석이 136개 였으므로,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163.000 이나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포스트]지의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은혜교회에 대해 우리가 말한 것은 시카고와 미국전역에서 비슷한 상황이다.
매주 그런 교회에서 변호사, 의사, 정치가, 언론인, 부동산업자, 상인, 가끔은 낙태지지자들이 쿠션이 있는 멋진 의자에 앉아 1시간 반을 보낸다.
. . . . 그 모든 곳에서 노동자들은 아무리 믿음이 좋고 똑똑해도, 마치 화염검을 든 천사가 입구를 지키고 있기라도 한듯,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처럼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좌석을 차지하고 있고, 가난한 성도들은 불편한 자리에 또는 뒤에 서서, 아니면 아예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미국 감리교회의 19세기 모습이었습니다.

미국의 감리교회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B. T. 로버트 목사와 같은 뜻있는 목회자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B.T.로버트는 악을 금지하고 타락한 마음을 울리는 성경이 무효와 되고 있으며 교회의 양심이 시들어간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감리교회가 영혼을 얻는 것 보다 재산을 축적하는데 더 성공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고문에서 그는 교회 좌석의 판매를 실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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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거래는 예배를 돕는다는 의도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품위있고 효과있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주님은 그것을 참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작은 채찍을 만들어,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만약 그 분이 경매에서 최고값을 부른 사람에게 성전의 일부를 팔아넘기는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하실까?
아버지의 집에서 회중석 매매가 희생제물 매매보다 그 분을 덜 화나게 할까?
그의 예언자적 눈길이 수세기를 통과하여, 자신이 세운 교회의 최신판 타락인 회중석 대여제에 닿는다면, 다음과 같은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가장 강력하게 정죄할 것이다.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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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로버트는 이러한 저항을 하다가 감리교단에서 목사직 취소처분을 받고 축출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1860년, 그의 뜻에 동조하는 목회자들과 함께 ‘자유감리교단’를 세우고 새로운 미국의 감리교회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전파와 돈으로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했고, 결국 미국의 전체 감리교회에서 교회 좌석매매 행위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감리교회가 좌석을 판매하여 부를 얻은 것 처럼, 오늘 날 한국교회는 교회직분을 판매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일부 한국 대형교회에서는 장로가 되려면 몇 천만원의 헌금을 해야하고, 권사가 되려해도 이에 못지않은 큰 헌금을 해야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행위가 미국 감리교회의 좌석판매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직분에 대한 헌금을 교회들이 아주 그럴듯한 좋은 소리로 포장을 하여 교회에 힘이 되어주는 것 처럼 말하고 독려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미 직분을 받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낀다면 이미 헌금이 아니고 직분 구입비가 되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배당 좌석을 구입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회는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는 예수님의 엄중한 꾸중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특별헌금없이 직분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미국 감리교회에서 예배당 죄석 매매가 사라졌듯이.

(※ 저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들의 의견은 아마 순수한 심정의 의견일 것입니다. 저는 충분히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9세기 미국 교회에서 매매되었던 특별좌석 (필라델피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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