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중인 저는 현재 몇 권의 기독서적을 지참하고 1주일을 예정하고 독서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독서여행은 이곳 저곳 목적지를 옮겨 다니면서 읽고 싶었던 기독서적을 읽고 생각하며 다니는 저만의 여행 스타일인데, 현재 전라도 전주에 도착해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주시 한옥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전동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전동성당은 기독교(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던 초기에 가슴 아픈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당입니다.
전동성당은 한국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가 순교당한 자리 위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전파되던 시기에, 전라도 전주 인근에 있는 진산이라는 곳에서, 전라도 최초의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는 유항검이라는 사람이 1790년, 청나라 북경의 주교인 구베아 신부에게 제사를 천주교인이 지내도 되는지 문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베아 신부는 제사는 천주를 배신하는 행위이므로 절대 제사를 지내서는 안된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당시 유교가 철저히 지켜지던 조선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의 또 다른 기독교인인 윤지충, 권상현 두 성도가 이 소식을 듣고 과감히 폐제(제사를 폐함)를 실행하고, 집안에 모시던 신주(神主)도 불태워 버렸습니다.
(신주는 죽은 사람의 혼령이 깃들어 머문다고 인식되는 나무패 입니다.)
그러자 이를 이상히 여긴 이웃들이 두 사람을 관가에 고발하게 되고, 관가에서는 두 사람이 천주교인으로 제사를 폐하고 신주도 불태워 버렸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진산군수는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급기야 이 사건이 정조에게 까지 알려지게 되는 대사건이 됩니다.
정조는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하고 두 사람을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윤지충, 권상현 두 성도가 전주로 끌려와 1791년, 현재 전동성당의 자리에서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관리 잘못으로 당시 진산군수도 곤장 100대를 맞고 귀양까지 보내지게 됩니다.
이 사건을 ‘폐제분주 사건’ 또는 ‘진산사건’ 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 참수형으로 순교한 윤지충, 권상현 두 성도가 한국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천주교 첫 번째 박해인 ‘신해박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약 10년후, 다시 일어난 ‘신유박해’ 때에 사건의 발단의 되었던 유항검도 전동성당 자리에서 능지처참형을 받아 순교하게 됩니다.
이후 1889년 보두네 신부가 전주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 현재의 전동성당터를 구입하고 전동성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현이 참수되었을 때 전주성 성벽에 그들의 머리를 매달았는데, 그들이 흘린 피가 전주성 성벽돌에 스며들었다고 하며, 그 돌들이 보관되었다가 전동성당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즉 전동성당은 순교자의 피묻은 주춧돌 위에 세워진 성당인 것입니다.
전동성당을 돌아보면서 참으로 목숨을 받치면서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으려 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진심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그 분들 처럼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졌을까 ?”
(고린도전서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 더 하는 말 -
그런데 이러한 제사와 관련된 순교자들을 배출한 천주교는, 아이러니 하게도 현재는 제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진산사건으로 순교한 분들이 천국에서 이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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