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점검과 다시 시작하기 3]
2장. 올바른 믿음인가?
어쨌든 교회 나오면 된 것 아닌가?
아마도 이렇게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좀 잘 못 알 수도 있는거 아니야? 그런 상태라도 열심히 교회 나오고 교회생활 잘 하면 문제될 것 없는거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성경의 오병이어 사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병이어 사건의 현장에는 남자만 약 5천명이 모였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만오천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배가 고픈 상태에서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로 그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셨다.
특히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해 본다면 이 오병이어 사건은 해피엔딩(Happy Ending)일까 새드엔딩(Sad Ending)일까?
(요한복음 6:14, 새번역)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이다” 하고 말하였다.
여기까지 보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실 새드엔딩이었다.
(요한복음 6:15, 새번역)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15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을 싸늘하게 그냥 버려두고 냉냉하게 현장을 떠나버리신다.
이 모습은 결코 유쾌한 모습이 아니라 실망하시고 불쾌해 하시며 화가 나신 모습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예수님을 다시 만난 무리들이 예수님께 왜 그렇게 떠나셨는지를 묻는다.
(요한복음 6:26,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진정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서, 즉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서 예수님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 부른 것, 즉 세상의 만족을 예수님을 이용해 얻으려고 쫓아다녔다는 것에 화를 내시고 냉냉하게 그들을 떠나버린 것이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려 한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버려두고 떠나신 것은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강변하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분노케 한 사람들은 누구였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쫓아다닌 사람들 이었다.
오늘 날과 비교한다면 교회를 안나온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나오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멋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신 것이다.
즉 자기 멋대로 “예수님은 어떤 존재다.”라고 한정 지어 놓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 딴에는 열심히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통 교회에서 “자기의 믿음을 돌아봅시다.” 하면 자기의 열심을 돌아보려고 하고 자기의 열심이 부족한 것을 반성하려 한다.
그런데 핵심은 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약 오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배가 고프도록 여러시간 뜨거운 중동지역의 벌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결코 이 사람들에게 열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그러한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열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화를 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향성이 어긋난 열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저곳인데 엉뚱한 곳으로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병이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사실 예수님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았고 그 분의 기적을 목격했으며 오병이어라는 엄청난 기적의 빵을 직접 먹은 사람들로 예수님을 아마도 열열히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기적의 빵을 먹은 후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한 모습에서 다 드러나 버렸다.
아마도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그 분이 통치하면 배고플 걱정은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열심을 가졌던 것이다.
즉, 믿음이란 열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올바로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올바로 믿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멋대로 “이게 올바로 믿는 걸꺼야.”하고 엉뚱하게 열심을 내는 것은 예수님을 오히려 실망하게 만드는 짓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을 믿겠다고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있긴 한데 정작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앉았고 자기들이 만든 신을 예수님이라고 믿고있는 모습을 보시면 한심한 생각이 드시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쨌든 교회 나오면 된거 아닌가?”하는 소리는 예수님을 화나게 할 소리인 것이다.
교회에서 이 열심에 대한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일을 할 때 잘 몰라서 자신없다고 하면 대개는 “좀 모르면 어때. 일단 열심히 해봐. 하면 다 잘될거야.”하는 권면의 소리를 듣는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A : “학생부 교사가 없으니 이 번에 학생부 교사를 좀 해줘.”
B : “어… 저 하나도 모르는데요. . . .”
A : “아이, 좀 모르면 어때. 그냥 열심히 하면 되.”
그런데 예수님은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한 번도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성경은 올바로 그 뜻을 알아야 하며, 올바로 그 진리의 내용을 모른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막 믿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로 믿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올바로 믿을 때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즉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35,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쁨을 우리는 누리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행복한가?
아니면 혹시 교회에 나오면서 오히려 불행해진 것은 아닌가?
“교회만 안나왔으면 내가 즐기고 살 일이 얼마나 많은데 . . . 그러면 더 행복할텐데 . . .” 하는 생각이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러셨는데 웬걸 주일날 교회 오니까 더 바쁘기만 한 걸. 쉬지도 못하고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고 있진 않는가?
만약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어쩌면 아직 진짜 믿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가운데 행복해지기 위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결코 주리고 목마르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그 선물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른 믿음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며 그 과정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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