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점검과 다시 시작하기 7]
이 믿음의 새가지 재료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회심에 다다르는 단계를 몇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무의지 단계
의지(없음), 지식(없음), 성령(없음) – 아무것 도 없는 단계
무지 단계
의지(있음), 지식(없음), 성령(없음) – 의지는 생겼으나(알고는 싶으나) 아는게 없는 단계. 지식이 공급되지 않은 단계 (호기심은 있는데 뭐가뭔지 전혀 모르는 단계)
불신 단계
의지(있음), 지식(있음), 성령(없음) – 의지도 있고 지식도 생겼는데 믿어지지는 않는 단계 (믿고는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다는 단계)
회심 단계
의지(있음), 지식(있음), 성령(있음) – 성령의 도움으로 드디서 믿음이 생기고, 회개를 하며 영생의 소망을 갖는 단계
자신은 어떤 단계에 있는 것 같은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속해있는 단계가 ‘무지’의 단계인 것으로 많은 기독교 전문가들이 본다.
어떤 계기로, 또는 전도를 받아서, 또는 그냥 모태신앙자로써 그냥 저냥 교회를 다니기 했는데 항상 복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생각(의지)은 있긴한데 지식을 구하는 실천이 잘 안되는 그런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지식이 없어서 기독교인이라고 불리우고 종교란에 기독교인이라고 쓰긴하는데, 누군가가 기독교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거나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게 되고 또 비그리스도인이 오히려 어떤 성경지식을 가지고 논리로 공격해오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상태는 구원이 뭔지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상태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와서 고백도 하고 예배로 드리고 열심히 활동도 하지만. . . .
그 다음 ‘불신’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아무리 의지가 있고 이것 저것 성경공부를 해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실제 교회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런 단계의 사람이라고 교회에서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태에서 학생회장을 맡았다면 자기가 그런 상태라는 것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만약 그 상태에서 나이가 먹고 교회에서 집사 직분도 받긴 했지만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어떻게 고백 하겠는가? 그런 사람이 목사라면 어떻게 고백을 하겠는가?
‘회심’의 단계는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할 수 있고 구원이 무엇인지 잘 아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우리 신앙의 1차 목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태가 되려면 각 단계에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1.무의지 단계
1) 복음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주기
무의지 단계에 있는 사람은 주변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복음의 필요성을 지식적으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2) 복된 삶을 보여주기
이것은 무의지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가장 못하고 있는 부분이 이것이다.
복된 삶을 보여주기는 커녕 비난받을 만한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은 커녕 혐오감을 증가 시키고 있다.
3) 마음의 장벽을 들어주고 해소해 주기
무의지 단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거나 아니면 오해가 있거나 또 아니면 어떤 풀리지 않는 분노가 있거나 한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TV뉴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목회자들의 범죄, 또는 교회가 반대하는 이슈가 사회적으로는 호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2.무지 단계
1) 복음의 핵심을 배우기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다.
“성경을 배운다”와 “복음을 배운다”는 사실 좀 다른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왕의 순서를 다 외운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을 모두 외운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안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가 바울의 1,2,3차 전도여행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자. 그래도 그가 구원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복음의 핵심이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 즉
- 인간이 왜 죄인인가?,
- 하나님이 왜 창조주인가?,
- 우리에게 구원이 왜 필요한 것인가?
- 우리에게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이런 질문들과 같이 성경의 관점들을 꽤뚫는 핵심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특히 학생, 청년들)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2) 마음 껏 질문하고 대화하기
그래서 이러한 복음의 핵심에 대한 것들을 마음 껏 질문하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모태신앙자에게 필요한 일이다.
소그룹 같은 모임에서 서로 솔직히 마음 껏 털어놓고 의견교환을 하고 그들만으로는 지식의 한계가 있으므로 목회자들이 지도해 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3) 의심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의식이 필요하고 또 이러한 분위기를 교회가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게 진짜일까?
이게 사실일까?
그런 의심들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묻고 답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초대 베뢰아 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그런 태도를 가졌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이성으로, 지성으로 이해하고 믿는 ‘품위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3.불신 단계
지식을 어느 정도 쌓았는데도 불구하고 믿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1)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하기
이 단계부터는 사실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하나님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더라도, 믿어지지 않더라도 성령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성령이 이 믿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 하셨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11-13)
2) 초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기
기도 했다면 이제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므로 초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성령의 도우심이 일찍 오기도 하고 늦게 오기도 한다.
이것은 현상적으로 볼 때 개개인의 인성, 신앙상태 등에 의해 죄우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믿어지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어지는 시점이 늦었다고 그 사람이 일찍 믿은 사람보다 믿음이 떨어지는 것도 전혀 아니다. 오히려 늦게 믿게된 사람이 더 열열한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성경에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므로 초초해 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될 일이다.
자기가 안믿어진다고 교회를 떠날까? 하는 생각은 정말 영양가 없는 생각이다.
3) 신앙의 모습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기
이런 학생들이 있다.
“목사님, 저는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도 엄마한테 화를 많이 냈어요.”
그러나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지만 신앙의 옷을 입은 자들도 본질적으로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반복하는 죄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완벽해야 성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모습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자꾸 나타난다고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고 절대 말 할 수 없다.
성경은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고 그러한 연약함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가르친다.
오죽하면 바울 사도께서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며 탄식하였을까.
(로마서 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런데 현상적으로 보면 지식이 충분하지 못한데도 성령께서 도우셔서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겨우 구원이 뭔지 어렴풋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거듭남의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잘 아는데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성경을 그렇게 아주 잘 알지는 못하는데도 믿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믿음은 성령의 증거’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성령은 우리의 지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보시는 것 같기도 하다.
진리에 대해, 복음에 대해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고 얼굴을 돌릴 때 성령의 도우심이 작동하고 그로인해 우리가 진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은 문 앞에서 주님이 문을 두드리고 계실 때 아주 조그만 의지로 문 손잡이를 돌여 문을 여는 정도의 의지의 발현과 같다.
그러면 예수님이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와 먹고 마시겠다고 하신 것 처럼 성령이 우리 영을 터치하시고 우리가 믿어지게 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회심 단계
회심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1) 예배
2) 교회를 형성하기
3) 다른 지체의 회심과정을 도와주기
그러나 주의 해야할 것이 있다.
이 단계들은 계급이 아니다.
잘 믿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만야 ”야, 너 안믿어진다며. 한심하다 교회를 나온지 20년이 다 되가는데 아직도 그게 안믿어지냐? 교회 헛다녔다 야.” 이런 식으로 말하고 무시한다면 바로 믿음의 상태를 계급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이 글의 목적은 클리닉이다.
각자 자기 진단을 통하여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조치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클리닉을 거치지 못해서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겉도는 모태신앙인들이 많기 이러한 글을 올리는 것이다.
불신의 단계에 있는 사람을 교회는 회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회심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봉사, 헌신 등을 요구한다. 그 사람은 양육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그 반대로 회심한 사람인데 교회 어쩌다 한 번 안나왔다고 불신상태라고 판단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면 안되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서 이런 자가진단을 해보고 온전한 단계의 믿음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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