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안되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

<이해 안되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 . . .”

성경에서 이해 안되는 비유 이야기 중에 악명을 떨치는 비유의 하나가 청지기 비유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낭비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친 자들의 빚의 일부를 주인 몰래 탕감해 주었는데도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있다고 칭찬했다는 것이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주인에게 손해를 입힌 청지기가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줌으로 다시 2차 피해를 주인에게 끼쳤음에도 어떻게 이 청지기를 주인은 칭찬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서울장로회신학교 신약학교수인 김호경 교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예수가 하려던 말들] 본문 중>

“그것은 또다시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첫 번째 낭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을 테지만, 두 번째 낭비는 그 이익이 빚진 자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제외하면, 주인에게 미치는 결과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주인의 재산에 한 번 더 해를 입힌 청지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청지기의 예기치 못한 해법에 놀라고 있을 때, 더욱 놀라운 주인의 반응이 나온다. 

주인은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다. 주인은 청지기의 첫 번째 낭비에 대해서는 해고를 경고 하지만 두 번째 낭비에 대해서는 칭찬을 한다.

같은 낭비에 대한 주인의 서로 다른 반응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첫 번째 낭비는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주인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청지기로 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낭비는 상황이 다르다.

청지기로부터 탕감을 받은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주인에게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탕감을 통해서 빚진 자들과 중간에서 마음을 써 준 청지기의 관계가 돈독해쳤을 것은 분명하며 더 나아가 이 탕감은 궁극적으로 예기치 않은 은혜를 베푼 주인의 명예를 드높인다.

여기서 주인이 재산의 손해를 이유로 들어서 빚을 탕감해준 청지기를 해고한다고 상상해 보라!

주인은 삽시간에 자신의 욕심만 챙기는 사람으로 소문이 날 것이며 그의 명예는 또 다시 추락할 것이다. 그는 청지기를 관리하지 못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악한 고리대금업자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낭비로 말미암아 위기를 맞은 청지기의 이야기는 청지기의 두 번째 낭비로 말미암아 주인의 위기로 변한다.

주인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청지기를 칭찬하는 것뿐이다.

결국 청지기와 주인은 같은 방법으로 살아남는다, 이는 빚 진 자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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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 비유의 이야기는 갑자기 등장하는 8절의 “빛의 아들들”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의 아들’은 불의한 청지기, 그리고 보통 세상 사람들을 뜻합니다.

‘빛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을 섬긴다는 우리 크리스챤과 샅습니다.

이 구절의 뜻은,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의한 재물이지만 이용하여 이웃에게 선을 베풀 줄 알았으나 소위 빛의 아들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런 지혜도 갖지 못했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이웃에게 선을, 선한 영향을 베풀지 않고 사는,  ‘빛의 아들들’이라 일컫는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이웃에게 불의한 청지기 처럼 선한 영향을 끼치기는 커녕, 세상에 대해 지혜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자신들의 득세를 위해 사회의 비난도 아랑곳 하지 않는, 급기야 ‘개독교’ 소리를 듣는 작금의 한국교회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통렬한 외침이 이 비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벌어지는 각종 비리와 법정다툼, 세상의 이권에 발을 담그려는 성직자들, 뉴스에 끊임없이 보도되는 성폭력 목사들, 자식에게 교회를 회사 물려주듯 세습하는 목사들, 교회터 알박기로 교회를 돈벌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목사 등, 차마 얼굴을 들 수 없는 교회의 모습을 한국교회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전도의 길은 막히고 가나안 성도(‘안나가’ 성도)는 늘어나며, 부흥은 커녕 쇄락의 길을 걷고 있고 있는 한국교회는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저와 우리 모두는 ‘빛의 아들들’이라 일컫음을 받는 동시에 또한 ‘지혜의 아들들’이 되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아감으로써 우리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히는 크리스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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