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보는 사람들>

<기적을 보는 사람들>

(요한복음 9: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한복음 9:32-33)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한복음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때, 이 기적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 각각 다른 곳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기적의 능력이 어디서 부터 오는지 주목하지 않았고, 다만 그들의 장로의 유전인, 자신들이 만든 율법의 눈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눈을 뜬,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과 니고데모는 율법이 아니라 그 기적에 주목하였고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을 때 그 기적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았고 진리를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그 기적의 본질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본다고 하나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사람들을 어떤 율법, 또는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법으로 묶어 놓으면 그 법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매몰되어 그 법의 취지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 처럼 율법에 매몰되어 예수님의 기적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은 철저히 율법으로 사람을 묶어 놓는 대표적인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율법을 지키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이단들이 써먹는 수법도 바로 이런 수법입니다.

많은 기독교 이단들도 이런 종류의 율법을 만들어 사람을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묶어 놓습니다.

‘여호와의 증인’같은 이단의 신자는 그들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며, 성경과 교리도 계속 공부하고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집집마다 방문해서 초인종 눌러서 전도지 돌리거나 길거리에서 교리서 가판대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합니다. 또한 수혈을 받으면 안되고 병역도 거부합니다. 이런 사항들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증이 신도들은 이러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쇄뇌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그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보다는 이러한 규율을 지켜 천국에 가겠다는 행위구원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겨 구원을 위한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구원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신천지 같은 이단도 같습니다.

오직 144,000명 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신도들을 쇄뇌시킨 다음 이 144,000명에 들기 위한 조건으로 포교를 시킵니다.

그래야 144,000명에 계속 속할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스라이팅을 시전합니다.

이 모두가 사람들을 율법에 매몰되게 하여 본질을 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요새는 신도가 144,000명이 넘어서 고민을 하다가 이제 시험을 본답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해야만 144,000명에 들어간다고 해서 시험장이 난리랍니다. 그리고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이 자신은 지옥간다고 실신을 하고 기절하는 등 참으로 해괴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비본질적인 율법, 규율 등으로 사람들을 매몰시키는 이단적 수법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보려는 자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연자맷돌의 저주’를 받을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정통 교회라 하더라도 만약 교회가 이러한 비본질을 강조하여 사람을 묶어 놓으려 하고,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지 않는다면 경계하여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헌금을 많이 하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할 것 같이 교인들을 헌금에 매몰시키고 기복신앙에 매몰시키며, 담임목사를 추앙하게 만드는 비본질에 교인들을 매몰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바리새인들 처럼 되어 가는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쁜소래교회는 이런 교회와 전혀 다른, 바로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너무도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과 니고데모 처럼 항상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기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함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 모두 “보지 못했으나 보게 된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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