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빌립보서 3:10-15)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이신득의’의 원리를 끊임없는 반복하여 말하는 바울이 의외의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어도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은 구원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지 완성이 아니라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여집니다.
구원의 완성은 우리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고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렀을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동안은 바울의 말처럼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할 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
(에스겔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고린도전서 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에스겔서와 고린도전서 말씀은 무서운 말을 합니다.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동안 지켜왔던 의는 전혀 기억되지 않으며 그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즉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재한 사람은 이미 믿음으로 칭의를 얻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성경은 섬뜩한말을 합니다.
저는 칭의는 구원의 과정이지 완성이 아님을 이 말씀들이 명백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칭의를 얻으면 무슨 일이 행해도 천국에 간다”는 구원파가 왜 틀렸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젊은 날, 칭찬받을 만한 신앙과 믿음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인생막판에 죄에 무너지면 이전에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신앙을 잘 지키다가 인생말년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봅니다.
훌륭한 신앙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큰 교회로 부흥한 후, 자기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려고 교단법도 무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한 저명한 목사의 마지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성추문으로 망가지는 사역자들을 봅니다.
잠언을 쓸 정도로 지혜로웠고 하나님의 성전을 성심을 다해 건축하였던 솔로몬이 말년에 이방신의 산당을 짓고 절하는 어처구니 없는 말년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실족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나가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계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지키려고 애써야 하고, 이것은 말씀묵상과 기도를 그치지 않음으로 이루어질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완전하지는 못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더라도, 빨리 회개하여 다시 깨끗게 되면서 애쓰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발을 씻듯이 말입니다.
(요한복음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따르고 살려고 애쓰는 우리의 ‘진심’을 하나님은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43: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 48:14)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히브리서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저는 ‘칭의’는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칭의’는 마치 대학의 합격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서는 그 합격증을 결코 취소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을 온전히 할 수 있을지는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합격증을 잃어버렸다든지, 정신없이 살다가 등록날짜를 잊어버렸다든지, 스스로 대학을 안가겠다고 합격증을 찢어버렸다든지, 등록일에 학교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려 도착하지 못하고 등록을 못했다든지 등등, 취소되지 않은 합격증을 받아놓고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됩니다.
저는 그래서 ‘구원은 자율주행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까지 신호등을 잘 지키고 길표시를 주의하여 보면서, 네비게이터의 안내를 무시하지 않고 귀담아 들으며 무사히 대학까지 도착해야하는 여행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그 신호등과 길표시는 성경말씀이고, 네비게이터는 성령님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안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배우고 배워야, 바울이 말한 목적지인 구원과 부활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금요기초교리반]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귀한 예수님의 목숨을 거셨습니다.
구원은 그토록 귀한 것이기에 우리는 구원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 부끄러운 얼굴이 되지 않기를 정말 바라고 바랍니다.
솔로몬이 실족했다면 저 자신도 위태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성령께서 실족하지 않도록 붙드시고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자신 스스로 매우 위험한 인간임을 알기 때문에 더욱 간절합니다.

Add comm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