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숭배 문제>

<천사숭배의 문제>
(골로새서 2: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아직도 해석의 논란이 있는 구절이 골로새서 2:18절 인것 같습니다.
‘천사숭배’라고 번역된 부분의 해석에 따라 번역된 대로 ‘천사를 숭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유대교적 신비주의’를 의미하는 것인지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천사숭배’ 부분은 헬라어 원본을 직역하면 ‘천사들의 예배’인데 이것을, 1)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드리는 예배, 또는 2) 천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글번역성경은 전자의 해석을 따르는 반면, 영어성경에는 대개 후자의 해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the worship of angels (NIV)
worshipping of angels (KJV)
the worship of the angels (NASB)

 

후자의 해석은, 고신대학원 신약학 교수인 길성남 교수의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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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신비한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사들이 천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그 예배에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체험을 신앙의 가장 높은 차원에 속한 것으로 믿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신 중요한 증거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이 환상을 보거나 신비한 체험을 하는 방편으로 중시한 것은, 엄격한 율법 준수와 “일부러 겸손함”(2:18)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일부러 겸손함”이라고 번역한 것은 본래 “겸손”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입니다(‘타페이노프로쉬네’). “겸손”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골 3:12).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는 거짓교사들의 행위와 관련이 있으므로 부정적인 개념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여 “일부러 겸손함”(NIV: false humility)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동사형(‘타페이노오’)은 칠십인역(LXX,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에서 종종 “고행하다,” “금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James D. G. Dunn, Colossians, 179). 또 이 단어 자체는 몇몇 문헌에서 “금식”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전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는 금식과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행위로 자기를 낮추고, 그렇게 하여 천상에 올라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적 신비주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이런 종류의 유대적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일부 조항들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금식을 하고 자기 몸을 괴롭게 하는 방식으로 환상을 비롯한 신비 체험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을 걷기보다 환상과 체험을 통해서 최고의 경건과 영적 지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체험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도보다 체험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그리스도 중심적인 종교가 아니라 체험 중심적인 종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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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동안 주류를 이루어 왔던 전통적인 해석방법은 한글번역 성경대로 골로새서 2:18을 천사숭배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해석은 아래와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천사들이 단순히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만 수행했지만, 신구약 중간기에 들어서면서 유대교 내에서 천사들을 율법의 전달자로 해석하는 경향과 사탄의 세력으로 부터 보호를 받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천사의 위상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나아가서 천사들을 숭배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신논단, [천사숭배논쟁], 정창교 교수, 인용)

또 하나는 당시 골로새 근처 브르기아 지방에서는 금욕주의적 의식이나 신비한 입회의식 등, 소위 천상이 세력들을 달래고 숭배하는 사상들이 있었는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골로새 교회 신자들도 여전히 그러한 영향을 받아 천사들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부 신비한 체험을 통해 이러한 영적존재를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것을 과장하여 자랑하며, 천사숭배의 사상을 지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천사숭배는 아니고 체험적 신비주의를 말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이 이러한 유대교적 신비주의 요소와 헬라의 이교적요소가 혼합된 이단의 형태였고, 하나님을 직접 대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고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겸손한 모습인 것 처럼 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이 거짓가르침을 ‘메르카바 신비주의(Merkabah mysticism)’라고도 부르며, 천사의 중재자 역할이 그 가르침에 두드러지게 강조된다고 합니다. (장신논단, [천사숭배논쟁], 정창교 교수, 인용)

그래서 2:18절에 ‘꾸며낸 겸손’이라고 바울이 표현한 것이 이렇게 천사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 마치 겸손한 것인양 행하는 것을 비판한 구절이라고 봅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당시 이 천사숭배가 만연해져서 심지어는 천사를 예수님과 동급으로 볼 정도였다고 분석하고, 그 때문에 히브리서 1:4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밝혀야만 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이 두 가지의 해석을 통하여 우리는 천사와 같은 중재자를 숭배하는 것과 무분별한 신비주의를 배격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갖게 됩니다.

바울은 이처럼 우상숭배적인 천사숭배는 물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중재자 역할,또 무분별한 그리스도보다 체험을 더 중시 여기는 신비주의를 비판하며 배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에서 보면, 성자를 숭배하고, 마리아를 중재자로 보는 카톨릭의 교리가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성경구절의 해석을 어떤 방향으로 보든지간에 우리가 숭배 해야할 오직 한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중재자 없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 어떤 것이라도 숭배의 자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허용한다면, 우상숭배가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사든 인간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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