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잘 모르는 구절>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구절은 누구나 다 아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아직 이 구절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 구절의 여러가지 해석들을 들여다 보지만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반부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에서, ‘실상’의 헬라어는 ‘휘포스타시스’인데, ‘의심할 수 없이 확고하게 구축된 객관적인 실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해석은 그 구체적인 실체가 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확실하게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으로 많이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뜻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며”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성경의 NIV도 이 번역을 따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부분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하고 내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로 해석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 현실로 나타난다는 기복신앙적 구절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과 전혀 관계없다는 말입니다.
“바라는 것들”이 내가 욕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은 구원에 관한 내용이지 기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들”은 ‘구원’이지 ‘기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의 뜻은 “믿음은 구원의 실상이다”로, “믿음은 구원이 이루어짐을 확신하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 문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부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헬라어는 ‘프라그마톤’인데, ‘되어진 것, 사실, 행위, 사건, 업무’로, 하나님 나라나 천국을 의미하기도 하고, 현재는 보이지 않는 미래의 사건으로 장차 다가올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때를 뜻하기도 한다고 해석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제가 가장 잘 모르겠는 것은 바로 ‘증거’라는 단어입니다.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렝코스’는 법률 용어로, ‘판결하다’, ‘폭로하다’, ‘증거하다’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통의 해석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확실한 증거로 받아들였다’의 뜻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주님의 재림과 심판,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치 실험을 통해 얻은 확실한 증거처럼, 분명한 증거로 믿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확실한 증거물처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 마음이 많이 갑니다.
또 하나의 조금 다른 해석은 제가 깊이 신뢰하는 한 성서학자의 해석인데, 그의 해석은,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 ‘엘렝코스’를 그야말로 법률적 용어로 해석하여,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폭로하다”의 의미로 설명하는 해석입니다.
마치 검사나 변호사가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각자가 사건을 파헤지고 분석하여 논리적으로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증거”라는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실존함을 명백하게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히브리서 1장 1철을 아래와 같이 재 해석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논리적으로 따져서 실존함을 명백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우리가 복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논리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변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해석이 이 히브리서 1장 1절의 정확한 해석인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성서학자의 해석에 마음이 더 가고 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성경구절임에도 아직도 제가 잘 모르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도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성경해석이 참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문은성 목사님 답변>
본절의 “실상”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3장 14절에서는 ‘확신’(‘확실’ 개역)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으며, ‘본체’, ‘확증’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은 미쁘사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시니(민 23:19) 따라서 그 약속을 믿는 것은 그 약속을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보지 못하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영생복락(구원)이겠지요.
“증거”라는 헬라어 단어는 ‘확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앞의 문장의 내용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보지 못하는 것’은 ‘바라는 것’과 동일하며, ‘실상’은 ‘증거’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절을 이해할 때 전체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바를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지금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노력할 것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10:19~39)에 이어지는 믿음의 실증으로서 구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을 전례로 들어 독자들 역시 그들을 본받아 믿음을 유일한 생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구약의 선진들이 율법을 지켰다는 관점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절을 간단히 이해한다며, ‘행위나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확실하게 누리게 된다’ 이런 의미로 받으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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