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1-3)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조정민 목사 [답답답 2] 중에서.
예수님이 끌어안고 죽은 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는 버릇, 습관, 사고체계, 삶의 방식 모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 놀라운 자유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싸운다는 것은 덫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것입니다.
누가 더 옳은 가를 가리기 위해 싸웁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것임을 명십하십시오.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것이 죄의 뿌리임을 잊지 마십시오. 크리스천으로 10년, 20년 살았어도 여전히 내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영접기도하고, 주일에 헌금하고, 설교듣고, 가끔 성경보면 크리스천입니까?
죄가 뿌리 뽑히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도 여전히 불행합니다. 여전히 기쁘지 않습니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어떤 장로는 십일조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익명으로 십일조를 해왔는데 그걸 몰랐던 목사가 장로가 돼서 십일조도 안 한다고 비난을 한 것입니다. 본인에게 먼저 물어보았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우선 판단부터 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목사가 판단하는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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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오늘 날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바리새인은 스스로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율법을 잘 지키고, 옳은 삶을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용서를 모르는 삶을 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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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만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차별하지 않고 받아주시고 구원해 주셨으니까요. 크리스천은 주님의 사랑에 빚진 자가 되어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기로 결단한 사람들 입니다.
(기도)
“예수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참으로 흉악한 죄인입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이제 다시는 사람을 심판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소서.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건, 헤어스타일이 어떻건, 화장을 어떻게 하건, 어떤 차를 끌고 다니건,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만 사랑하게 하옵소서.
이제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고 분별함으로 죄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되 세상 사람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원죄로 부터 자유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조정민 목사가 경계한 ‘판단의 자리’에 너무나 쉽게 올라서는 저를 발견합니다.
어떤 일을 보거나 들으면 그 뒷 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하지 않고 판단부터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도 수시로 크리스천이 아닌, 모순된 저를 발견하고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대착각입니다.
자기가 의로운 줄 아는 큰 착각 속에 시도 때도 없이 스스로 빠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제가 참으로 부주의 하게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미성숙한 저의 모습입니다.
최근에 어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남을 향한 부주의한 판단이 상대방을 죽음과도 같은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남을 향한 판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자리에 제가 서지 않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조정민 목사의 기도가 동일하게 저에게도 이루어지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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