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사무엘하 15: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아히도벨은 이스라엘 왕국의 최고의 모사가 였습니다.
그의 계략은 마치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처럼 빈 틈이 없었고, 삼국지의 제갈공명 뺨치는 전략가였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성서 인물들중 발람과 아히도벨 두명을 최고의 모략가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명석한 모사가 아히도벨이 왜 다윗을 배신하고 구테타를 일으킨 압살롬 편에 선 것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그 원인을 그의 족보를 통해 읽어내고 있습니다.
아히도벨의 아들은 엘리암이고 엘리암의 딸이 바로 솔로몬의 어미니인 밧세바 입니다.
즉 밧세바는 아히도벨의 손녀 딸이고 그의 남편 우리아가 그의 손녀 사위입니다.
그에게 다윗은 손녀 딸을 범한 강간범이고 손녀 사위인 우리아를 죽인 살인범입니다.
즉 다윗은 그의 손녀 딸의 가정을 풍지박산낸 악인중에 악인 이었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원한을 가지지 않으면 이상한 것일 겁니다.
어떤 학자들은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도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음으로 몰아갈 때 같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사무엘하 23장에 보면 다윗의 용사들 37명의 명단에 나옵니다.
그 명단에는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우리아가 같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이 두 사람이 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전우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엘리암의 딸인 밧세바를 동료인 우리아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것은 아마도 엘리암이 젊은 용사인 우리아의 사람 됨을 보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 편에 설 때 엘리암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엘리암 역시 아히도벨과 함께 압살롬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할 것 같고 그의 비중으로 보아 성경에 이름이 등장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이후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학자들은 엘리암이 우리아가 전장에서 다윗의 계략으로 죽임을 당할 떄 현장에서 같이 죽임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 추정이 맞다면 다윗은 손녀 가정을 파괴한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까지 죽인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에 대해 원한이 사무쳤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구테타를 보고 그 편에 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하나님이 어느 편인지를 읽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깊히 생각했더라면 그런 큰 원한에도 불구하고 압살롬 편에 쉽게 서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원한이 결국 그의 명철함을 흐리게 하였고 결국 망하는 길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최후를 만들 수 있었던 그의 마지막 계략이 후새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무산되자 암살롬의 구테타는 실패라는 결론을 맺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목을 매어 한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히도벨의 비참한 삶은 다윗의 범죄로 인한 또 하나의 슬픈 결말입니다.
죄의 영향력은 이 처럼 꼬리를 물고 타인의 삶에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죄를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는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즈(Lorenz, E. N.)가 사용한 용어로, 초기 조건의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복잡계의 특성을 나타내는 이론으로 혼돈(Chaos)이론의 기초가 되는 말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외딴 곳에서의 나비의 날개 짓이 미대륙 동부에 거대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우리의 죄는 때로 마치 나비효과처럼 그 약영향을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며칠 전 한국의 기독교 장로회 통합측의 총회장인 김모목사가 자신의 교회의 모 권사와 대낮에 무인호텔에서 나오다가 교회 장로에게 현장에서 발각되어 온 한국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의 일탈이 한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그에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그결과는 전체의 한국 교회를 뒤흔들고 장로교 통합측 모든 사역자들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의 사람들로 부터 “그들이 하는 짓이 그렇지 뭐.”하는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은 물론 한국사회에 전도의 길을 막았으며 개독교라는 오명을 더욱 벗어날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죄의 영향력은 참으로 지독합니다.
아히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윗 한 사람의 죄가 얼마나 많은 불행을 만들어 냈는지를 생각하면 죄를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늘 죄 앞에 무력하고 연약한 우리들을 그래서 하나님꼐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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