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마가복음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다음 글은 한국에서 이음숲 교회를 개척 담임하는 젊은 목사인 손성찬 목사님이 쓰신 책 [묻다 믿다 하다]에 나오는 “예수만 아는 멍충이”라는 꼭지에 나오는 글의 일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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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아들은 틈만 나면 엄마한테 달라붙어 “엄마 좋아, 엄마 사랑해!”라고 말합니다.

아직 발음도 정확하지 않으면서 요따구로 애교를 떨어댑니다. 남자 녀석이 필요 이상으로 애교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애교가 ‘요따구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저한테는 안 해줘서 그렇습니다.  . . . . .  제 아내에게 샘이 나더군요. 그래서 한 번은 샘솟는 샘을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그랬더닌 0.5초의 머뭇거림 없이 대답합니다.

“엄마!”

 

이제 막 두 돌 지난 녀석의 발음 치고는 매우 빠르고 정확하고 단호했습니다.

물론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애들은 원래 뒤에 나온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책에서 배운 육아지식이 생각나서 순서를 바꿔서 물었지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랬더니 방금 전보다 0.1초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단호하게 외치더군요.

“엄마!”

 

웃자고 물어봤는데 그렇게 확인 사살을 받고 나니 한 대 쥐어박고 싶더라구요. 물론 저는 화평과 온유의 사람이라 참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모든 참사를 똑똑히 듣고 있던 다섯 살짜리 딸내미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딸은 누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그랬더니 이내 “아빠!”라고 하더라고요.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이 모든 것이 구라였음이 발각되었습니다.

 

잘 시간이 되어 이 감동을 살려 다시 딸내미한테 물어 봤지요.

“오늘은 아빠가 재워줄까?”

그랬더니 단호하게 선을 긋더군요. 아빠랑은 절대 같이 못자겠답니다. 이 말 인즉슨, 아까 아빠가 좋다는 말 역시, 단지 그 상황 가운데 저를 배려한 우리 장녀의 따스함 이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결국 구라였다는 말이죠. 즉 이녀석은 이미 관계의 감옥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진실은 숨기고 상황에 따라 구라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미 순수함을 저버린 다섯 살입니다.

 

‘어린 아이’라는 말은 . . . . . 과거에는 이를 해석하면 보통 아이들의 순수함을 떠올렸지요.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내 깨닫습니다. 애들이 어디가 순수합니까?  ‘젖먹이들’들을 관상용으로 바라볼 때나 귀엽지요. 정작 키워보면 옥수수 털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 . . . . .

그런데 ‘어린 아이’를 표현함에 있어 조금 다른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25)

 

여기서 ‘어린 아이’의 의미 역시 ‘약함’이라는 뜻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으나, 의미가 더 한정됩니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과 반대되는 속성의 인물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어리석음’이랄까요? 소위 ‘멍충이’지요.

 

앞에서 언급한 제 아들을 보십시요. 이 녀석이 멍충이 아닙니까?

눈치도 없고 누가 더 좋으냐는 제 질문에 전혀 상황 파악을 못합니다. 나아가 집안의 절대권력을 지닌 아빠가 아닌 엄마가 좋다고 대답하는 이 멍첨함, 바로 이게 어리석음의 정체 아닐까요?

 

상황및 관계에 대한 의식, 혹은 자기 유익을 위한 노림수를 완전히 배제하고 멍청할 정도로 한 길만 선택하는 것,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변화된 후, 모든 복잡함을 내려 놓고 오직 예수님의 명령과 사명을 따르기 위해 살아간 바울입니다. 목숨을 내놓기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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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충이, 자기 기대를 교묘하게 투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입니다.

. . . . . .

도대체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보길 원하십니까?

다 부질 없습니다. 예수님만 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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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만 아는 멍충이로 사는 것이 진정한 실속이자 지혜임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 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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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그런 멍충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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