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전쟁>

(역대상 19:2-4)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조문사절단을 암몬으로 보냅니다.

새로운 왕이 된 나하스의 아들 하눈이 이 사절단을 맞이하였는데 그의 신하들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행하여 돌려보냅니다.

 

19:3절에 보면 방백들이 새 왕이 된 하눈에게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방백들이 새로 왕이된 하눈을 약간 업신 여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새로운 왕인 하눈을 정치적으로 미숙한 왕으로 여기는 듯한 말투로 보이며 “너는 아직 잘 모르니 우리의 말을 따라야 한다”라는 암시가 들어있는 말투입니다.

어리석은 하눈은 그들의 말을 듣고 조문사절단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릅니다.

 

사실 새로운 왕은 미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륜이 있는 방백들이 정권이 바뀔 때 매우 중요합니다.

하눈이 왕이 되었을 때 아마도 암몬의 정치적 우위는 강경파가 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이 미숙할 때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정치무리들의 입김이 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 정치적으로 왕권을 확립하기에 미흡한 왕 하눈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을 따라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과 여로보암이 그에게 나와와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나 연륜있는 방백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젊은 강경파의 말을 듣고 강압적으로 그들을 대함으로 인해 북 이스라엘을 여로보암에게 빼앗기는 악수를 두는 것과 유사합니다.

 

정치는 외교가 상수이고 전쟁은 하수입니다.

외교가 통하지 않을 때 비로서 전쟁을 하는 것이 수순입니다.

그것도 상대방과 전쟁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을 때만 전쟁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하눈의 경우를 보면 스스로 다윗과 싸워 이길 능력도 없으면서 다윗을 도발한 어리석음을 저지릅니다.

일을 저지른 하눈은 그 때서야 부랴부랴 이웃한 아람에 은 천 달란트를 주고 용병을 고용합니다.

 

이러한 암몬과 아람을 대항하여 요압과 그의 아우 아비새가 이들과 맞서기 위해 출전합니다.

12-13절에 보면 요압의 군대는 요압은 군사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는 감동적인 연설을 합니다.

아마도 다윗의 군사들은 단단한 각오 속에서 전의를 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돈에 팔려온 용병들은 그러한 굳건한 전의를 다지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다윗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그들을 공격했고 암몬과 아람군대는 형편없이 패하면서 성읍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결국에는 다음 해에 다시 다윗이 암몬을 공격했을 때 완전 패배하여 왕의 왕관을 다윗에게 빼앗기고 암몬 백성은 이스라엘의 노역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주변의 어떤 나라도 암몬을 돕지 않게 됩니다.

어리석은 왕의 판단이 나라의 결국을 패망으로 이끌고 만 것입니다.

 

만약 하눈이 외교적으로 다윗과 좋은 관계를 맺었더라면 아마도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고 자신의 왕권도 튼튼해 졌을 겁니다.

외교에 미숙한 지도자는 나라의 백성들을 고난에 빠뜨립니다.

오늘 날에도 이러한 어리석은 지도자로 인해 나라가 도탄에 빠지는 일들을 목격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이와 같이 남들과 화평하기를 우선으로 삼고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이 될 것입니다.

하눈처럼 외교보다 전쟁을 택했을 때 자신과 백성들이 힘들어진 것 처럼, 내가 남과 화평보다 분쟁을 일으킬 때, 나 자신과 가족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하눈의 이야기에서 교훈으로 얻게 됩니다.

 

전쟁보다 외교가 우선이듯 이웃과의 갈등보다 화합이 우선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당연히 갈등보다 서로 사랑함이 우선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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