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5장 20-24)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제가 한참 이해하지 못했던 것중에 하나가 남유다의 요시야 왕의 허망한 죽음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남유다의 왕 중에서 선한 왕으로 손꼽히는 왕이었습니다.
그는 8세에 왕에 즉위하여 남유다를 31년 동안 다스린 왕으로서 오직 하나님 만을 경외한 왕이었습니다.
사실 요시야 왕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을 때 북이스라앨의 시조인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백성이 남유다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제사드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벧엘과 단에 각각 금송아지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제사 지내도록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일 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여로보암을 향하여 ‘요시야’ 라는 왕이 나와서 너의 우상숭배의 모든 것을 깨부술 것이고 너희 제사장들을 모두 불살라 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예언한 바로 그 왕입니다.(열왕기상 13:2)
요시아 왕이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는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상태였고 따라서 요시야 왕의 영향력이 북이스라엘까지 미칠 수 있을 때 입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은 전부 42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을 경배했던 왕들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윗 이후의 전 이스라엘 역대 왕들을 칭찬하실 때 두 가지를 가지고 칭찬하십니다.
첫 째는 “정직히 행하였다”고 칭찬한 왕들인데 약 8명 정도의 왕을 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고 칭찬하시는 왕들이 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칭찬을 모두 받은 왕은 오직 3명뿐으로,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왕입니다.
요시야는 그 정도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만연한 우상숭배를 타파한 왕으로 아세라 목상과 태양상을 비롯한 모든 우상들을 깨부수고 가루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바알의 제단을 허물어 뜨리고 우상을 숭배하던 우상의 제사장들을 모두 처단하여 불살라 그 뼈를 빻아 무덤에 뿌려버릴 정도로 철저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폐허같이 내버려져 있던 성전을 다시 수리하여 복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사시대로 부터 사라져 버렸던 유월절을(역대하 35:18) 다시 회복시켜서 온 유대 백성이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다시 경배하도록 만든 충성된 왕이었습니다.(열왕기하 23:21-23)
그는 성전을 수리할 때 발견한 율법책을 읽고(‘신명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 옷을 찢으며 악하고 악했던 그의 할아버지 므낫세 왕의 악행과 단명한 아버지 아몬 왕의 악행으로 인해 온 유다가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를 하였으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하며 하나님 앞에서 다짐을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다윗 왕 이후에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왕으로 요시야를 말합니다.
그는 그 처럼 하나님께 진심이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처럼 훌륭한 왕이었으면 솔로몬 못지 않은 영화를 누리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 같은데 그는 이 모든 종교개혁을 이룬 후 얼마 안되어 애굽과의 전투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그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충성된 왕이 이처럼 허망하게 죽도록 왜 하나님은 허락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충성된 요시야에게 내린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 세상의 복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을 때 요시야는 여선지자인 훌다에게 찾아가 이 일을 알렸을 때 훌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들에게 전합니다.
(역대하 34:23-28)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전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들은 말을 의논하건대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즉 하나님은 율법책에 나와있는 저주의 언약을 이행하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것은 므낫세와 아몬이 저지른 악행과 이를 따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며 율법책에 있는 약속처럼 이에 대한 벌을 내리시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사실 이 징계는 단지 그 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후에 계속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긴 안목의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무서운 징계의 말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충성했던 요시야에게는 복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복은 바로 죽어서 조상들의 묘에 장사될 것이며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을 보게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의 진실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은 완전히 다른 복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열왕기상 14장에도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인해 그 아들인 아비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그의 아내가 변장을 하고 선지자 아히야를 찾아갔을 때, 아히야는 그 아이는 물론 여로보암의 대를 하나님께서 끊을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실제로 그의 대는 그의 아들 2대왕 나답의 죽음으로 실현됩니다.(열왕기상 15:28-29)
(열왕기상 14:12-13)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즉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 아비야는 선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아비야를 치료하시고 살리실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애도 속에서 이 아이가 묘실에 들어가는 것이 복인 것 처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충성된 왕인 요시야에게 내리신 복과 같은 복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5억년이 되었다는 지구의 역사, 아니 138억년이 되었다는 우주의 역사 속에서 겨우 백년을 못사는 우리의 인생은 한 순간의 번쩍하는 번갯불과 같이 짧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 짧은 삶 속에서 우리가 복을 받겠다고 아둥바둥 거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쩌면 참 안쓰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 갈 그 복은 우리가 아둥바둥 구하는 세상의 어떤 복보다 큰 복이고 참된 복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시야 왕에게 내리시는 복은 바로 그 복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훌다의 예언에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훌륭한 점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이러한 훌다의 예언을 듣고도 모든 장로와 모든 백성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오게 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며 백성들 앞에서 선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요시야 왕을 보면, 가이사랴에 머물 때 성령께서 죽음을 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바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마감되든 그저 삶 가운데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요시야 왕과 바울의 믿음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요시야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면서, 요시야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신앙의 모습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그의 마지막 교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 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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